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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표 '대통령 사용 설명서'

by gambaru 2024.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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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들어 과거 어느 정권에서도 보지 못했던 방식과 규모로 대통령의 다양한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는 새로운 통치 기법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반면교사가 될 터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새로운 통치를 선보이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거부권 적극 행사로 국회 무력화

윤석열 대통령이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통과한 5개 법안 가운데 세월호 피해 지원법을 제외한 4개 법안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함으로써 재임 2년여 만에 국회를 통과한 14개 법안을 거부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 전까지 역대 대통령의 전체 거부권 행사는 66건이었는데 이 중 이승만 대통령 때가 45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이 거부한 법안 중 절반 이상인 24건은 재의결되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여당에 자신의 거부권을 적극 활용하라는 조언까지 합니다. 이런 기세로 간다면 거부권 행사로 폐기시킨 법안이 가장 많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겨레신문은 사설에서 이런 행태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습니다.

"국민의힘은 다수 의석을 지닌 더불어민주당의 강행 처리를 두고 “거대 야당의 일방 독주 악법”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정작 본연의 책무를 방기한 것은 여당이다. 비록 ‘여소야대’라곤 하지만, 여당으로서 야당과 대화하고 협상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걸핏하면 의사일정 보이콧과 거부권 요청이라는 극단적 수단에만 매달렸다. 야당 비판에 앞서 국정 책임을 진 집권당이 제 역할을 했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이를 부추긴 건 윤 대통령이다. 자제력을 잃은 거부권 행사로 헌법의 삼권분립 원칙을 흔들고, 여당을 무기력증에 빠뜨려 국회를 ‘정치 실종’ 지대로 만들었다... 거부권 행사가 잦다 보니 이젠 만성이 됐는지 국민 여론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다. 말로만 ‘협치’를 이야기할 뿐이다.

연금개혁안 논의 과정에서 여실히 보여줬듯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정부는 뒤로 쏙 빠지면서, ‘여야 합의’만 내세운다. 그러면 야당 주장에 여당은 반대하고, 야당은 통과시키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수순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윤 대통령은 별반 성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앞으로는 ‘여야 합의’를 내세우면서, 뒤로는 ‘거부권 활용’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임면권 방치로 인사 주무르기

대통령에게는 행정부를 구성하고 지휘·감독할 권한과 책임이 있습니다. 이를 위한 대표적인 권한 중 하나가 공무원 임면권입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부처 장관과 국가기관 수장 자리를 수개월째 비어 두는가 하면, 법 절차에 따라 야당의 추천을 받은 인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임명을 하지 않는 식으로 인사를 좌지우지합니다.

공수처는 초대 공수처장 퇴임 이후 지도부 공백이 3개월 넘게 이어졌습니다. 윤 정부에서 폐지를 공언했던 여성가족부 역시 차관 대행체제가 벌써 5개월 째입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여가부 폐지를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이 어려우니 장관을 임명하지 않아 유명무실한 부처로 만들겠다는 속셈으로 보입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최근 제9차 대한민국 국가보고서 심의를 마친 뒤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여가부 장관을 임명하라"는 권고를 내기까지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방송통신위원회 최민희 상임위원을 7개월 넘게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아 기다리다 못한 최 내정자가 자진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다양한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여야와 정부 추천의 5인 합의기구인 방통위는 그 결과 이미 오랫 동안 윤 대통령의 검사 시절 상사였던 김홍일 위원장과 대학 후배인 판사 출신 변호사 이상인 부위원장 2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YTN 민영화 등 민감한 방송 정책을 대통령과 가까운 두 사람이 결정하는 구조입니다. 오죽하면 이런 파행을 막기 위해 야당에서 방통위원장 탄핵안까지 내놨을까 싶습니다. 

적재적소 검사 활용 '사정 통치'

윤석열 정부에서는 검찰과 감사원, 국세청, 국가정보원 등 사정, 정보 기관을 국정운영에 적극 활용하는 행태가 어느 정부보다 두드러집니다. 사정기관을 핵심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검찰 통치'가 일상이 되는 '검사의 나라' '검찰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사무총장을 검사 출신이 맡았던 감사원은 지난 정권의 정책 실행 과정에 잘못은 없었는지 파헤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듯합니다. 가까운 검사 출신 인사에게 권익위원장을 맡겼다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갈아타도록 하는 이른바 검사 돌려막기 인사까지 합니다.

한겨레신문은 이같은 '사정 만능주의 통치'가 "전 정부와 야당, 노동조합, 시민단체, 사교육계 등을 끊임없이 부도덕한 집단으로 낙인찍고, 축출 대상에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검찰에만 몸담아온 윤 대통령의 관성이 국정운영에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같은 기사에서 이관후 건국대 교수는 "개혁이 필요하면 검사를 파견해 수사·감사를 해서 '나쁜 놈'을 찾아내 문제만 도려내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검찰을 동원해 죄인 다루듯 처리하는 게 윤 대통령의 직업적 습관이다 보니 전 부처의 인사, 조직, 운영이 모두 검찰화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행령 개정으로 법 무력화

국회를 거치지 않고 행정입법을 통해 대통령령(시행령)을 고쳐서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이른바 '시행령 통치'는 이번 정부만의 행태는 아니긴 합니다. 행정입법은 법률을 실제 집행하는 데 필요한 세부 규정에 대해 대통령이나 행정부에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을 통해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말합니다. 법률이 세세한 부분까지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행정부에서 유연하고도 구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일부 권한을 위임한 것입니다. 당연히 시행령보다 상위에 있는 법률의 기본 정신을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등 관련법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시행령을 제정했다가 헌법재판소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 조직법 개정을 통하지 않고 대통령실 인사 검증 기능을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으로 이관했으며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신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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