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다수가 의대 증원과 의사 숫자 늘리기에 찬성합니다. 그러나 얼마를 늘려야 하는지를 두고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의대 정원을 한 명도 늘려서는 안 된다는 의사 단체의 주장은 지방 의료의 열악한 현실을 무시하는 폭력이자 국민의 필요는 안중에도 없는 기득권 집단의 이기주의입니다. 그러나 의대 증원 규모를 '2,000명'으로 못 박고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는 정부의 고집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최근 서울고법이 의대 증원 집행 정지 항고심에서 정부에 "2,000명"의 근거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을 두고 "국민의 알 권리가 충족되지 않았다"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과연, '2,000'이라는 숫자는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이를 두고 벌어진 일들을 정리해봤습니다.
법원 제동 이후 복지부의 말바꾸기
교육부 등 정부는 법원의 자료 제출 요구 이후 관련 회의록이 없다고 했다가 있다고 말을 바꾸는 등 오락가락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정부는 그간 의료현안협의체,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와 그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전문위), 교육부 정원배정심사위원회(배정위) 등 4개 회의체를 통해 의대 증원 문제를 논의해 왔습니다.
그런데 교육부가 4일 의대 정원을 배분하는 배정위 회의 내용과 위원별 발언 요약본이 있다고 했다가 이튿날 회의록의 존재 및 제출 여부조차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번복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랬더니 국무총리실이 다시 "배정위는 정상적으로 회의록을 작성했다"고 했고, 8일이 되어 교육부는 “회의록은 없고 요약 문서만 있다”고 이를 다시 뒤집습니다. 복지부는 7일 보정심과 그 산하 전문위는 회의록을 작성, 보관하고 있다며 이를 법원에 제출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또한 의결 기구가 아닌 전문위 회의록은 없다는 입장을 이틀 만에 바꾼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의료계는 정부가 2,000명의 근거로는 미흡한 회의록을 숨기려다가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 지적이 일자 이래저래 입장을 바꾸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으로 공수처에 고발까지 했습니다. 의사단체들은 공식적으로 2,000명 숫자가 언급된 회의가 없다가 2월 6일 보정심 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의대 증원 규모를 처음 발표했다며 이날 1시간 가량 진행된 보정심 회의도 논의라기보다 일방 통보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회의록이 있는지 없는지 설명이 오락가락 하는 모습 자체가 2,000명 증원의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을 키웁니다. 4개 회의체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의대 증원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했지만 규모를 따로 논의하지는 않았다고 했답니다.
복지부의 2,000명 근거 보고서
복지부는 2월에 2,000명 증원을 발표한 직후 그 근거를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거론한 것이 전문가 보고서 3편입니다. 이를 근거로 2035년에 의사 인력이 1만 명 부족할 것이고, 여기에 취약지역에 필요한 의사 5,000명을 더하면 부족한 전체 규모는 1만 5,000명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KBS가 이 보고서들을 확인해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보고서는 각각 ①미래사회 준비를 위한 의사인력 적정성 연구 (홍윤철 서울대 교수, 2020년) ②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변화의 노동·교육·의료부문 파급효과 전망(서울대 산학협력단, 2023년) ③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 및 중장기 수급 추계 연구(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0년)입니다.
①에서는 2가지 시나리오를 적용해 의사 인력을 예측했습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의사의 공급과 수요가 적절하다고 가정했을 때 2021년부터 입학 정원을 1,500명까지 증원해도 의사 인력이 부족하지만, 일정 시기 이후엔 인력 초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65세 이상 의사 인력 생산성이 75%로 줄어든다고 가정했을 때 2021년부터 입학 정원을 1,500명까지 증원해도 의사 인력이 부족하고 역시 일정 시기 이후 인력 초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저자는 그러나 1만 명 부족이라는 숫자를 거론하지는 않았습니다. KBS와 통화에서 저자는 복지부가 "나름 숫자를 정리한 것 같다"며 "보고서의 근본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보고서의 취지를 "지역 간 불균형이 너무 심해 의료 제도 개선을 지역 의료를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1만 명 부족이 등장하는 것은 ② 보고서입니다. 보고서에는 "최소한 2021년 현재의 업무량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사 인력 규모의 확충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3,058명인 의과대학 정원을 2023년부터 조정한 시나리오별 추정 결과에 따르면, 추가적으로 필요한 의사 인력 수준을 가장 가깝게 충족하는 시나리오는 2023년부터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매년 5%씩 2030년까지 확대한 후 2030년 이후부터는 2030년 수준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2030년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은 4,518명이 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저자인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KBS 취재에 "정부가 2035년에 1만 명 부족하다는 근거로 이 보고서를 들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면서도 매년 5%씩 늘려 "2050년 쯤에 2만 2,000명을 늘리자는 것이지 지금 정부 안처럼 2,000명씩 5년을 늘리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매년 5% 증원이면 증원 첫 해는 3,058×0.05=153입니다. 이 교수는 "의사 수를 급하게 빨리 늘리려고 하면 그 나름대로 비용이 든다"며 "점진적으로 의사 수를 올리는 것과 절충을 맞춰야 한다"고 했습니다.
③ 보고서는 의사 수급을 몇 가지 모형으로 전망하면서 그 중 가장 적합한 모형 한 가지를 골라 진료량이 100%이고 진료일수가 265일일 경우 2035년에 의사 수가 9,654명 부족할 것으로 봤습니다. 정부가 2035년 부족하다고 근거로 제시한 수치에 근접합니다.복지부는 "3개 연구가 비슷한 수준의, 1만 명 수준 내외의 숫자를 제시하고 있다"며 "정부는 3개 연구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해 의대 증원 규모를 결정했다"고 설명합니다.
일찌감치 불거졌던 설설설
서울고등법원은 의대 증원을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의대 교수, 전공의, 의대생 등의 증원 집행 정지 신청을 기각·각하하면서도 매년 2,000명 증원의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2,000명 증원 결정은 2025학년도부터 2,000명을 늘려야 2031년부터 매년 2,000명씩, 합계 1만 명의 의사가 배출된다는 산술적 계산일 뿐 ‘2,000명’이란 수치의 직접적 근거는 특별한 게 없어 보인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2,000명이란 수치가 제시된 건 증원 발표 직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가 사실상 처음이었다"며 "증원 처분이 고도의 정책적 판단이란 이유만으로 처분의 적법성이 명백하진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 설명대로 '1만 명 부족'에는 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도 부족한 의사를 메꾸기 위해 교육 여건이 갖춰질 수 있는지 의문인 상황에서 매년 2,000명씩 증원을 해야 할 이유가 선뜻 납득이 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 '2,000'이 어디서 나온 것이냐는 소문이 난무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역술인 천공 루머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현 정부가 숫자 2000에 집착하는 것 같다'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 눈길을 끌었습니다. '클리앙'에 이 글을 쓴 한 작성자는 "천공 스승이라는 인간 이름이 이천공이란다"고 했습니다. '윤석열의 2000 게이트'라며 이 정부 들어 정책이나 행사에 유독 2000이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한다는 음모론을 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6급 이하 실무직 국가공무원 2,000명의 직급을 올리기로 했다, 대통령이 무료 급식소에 쌀 2,000㎏을 후원했다, 한미 정상이 이공계 분야 청년 인재를 2,000명씩 교류하기로 했다는 등등을 엮은 겁니다.

소문이 그치지 않자 천공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에 대해 반박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