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검찰총장이 7월 22일 오전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총장 패싱 논란이 일고 있는 김건희 여사 조사 경위를 보고받고, 대검 감찰부에 진상조사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본격 감찰 착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일종의 예비조사라는 것이 대검의 설명이라고 합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검 관계자는 "총장님 질책이 있었고, 중앙지검장은 여러 차례 죄송하다고 말했다"라며 "이후 총장은 보고 없이 조사가 이뤄진 경위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이 대면 보고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은 "제3의 장소를 총장이 거부할 것 같아 나름대로 판단했다"며 "수사팀에도 사전 보고 없이 조사해도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총장 시절 도이치모터스 사건에 대한 김건희 조사와 관련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이 배제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뒤늦에 보고했다고 둘러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JTBC 보도로는 이원석 총장이 이달 초 박성재 법무부장관에게 이 수사지휘권 회복을 요청했는데 거부당했다고 합니다. 윤석열은 김건희와 부부 관계이니 수사지휘권이 배제되는 게 당연하지만 이원석 총장까지 배제될 이유는 없는데도 법무부가 이를 거부한 겁니다. 당신은 수사에 신경 끄라는 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검찰 내부 문제"라면서도 "총장이 정치하려고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규정에 맞게 수사했는데 자꾸 문제 삼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이런 정황들이 사실이라면 이번 총장 패싱은 검찰총장의 체면 문제를 한참 넘어 마치 대통령실과 법무부, 서울중앙지검이 짜고 치기라도 한 고스톱 같아 보입니다. 서울중앙지검만 떼내서 보면 검찰총장에 대한 집단 항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원석 총장은 뒤늦게 조사 보고를 받고 분노를 표시한 데 이어 이날 출근길 기자들과의 질의 응답에서도 "국민들께 여러 차례에 걸쳐서 '우리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대통령 부인 조사 과정에서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국민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도 했습니다. 이 총장은 평소에도 중앙지검에 '검찰청 소환' 원칙을 지킬 것을 누누이 당부해왔다고 합니다.
비단 이 총장 뿐만이 아닙니다. 검찰은 김건희 사건의 경우 조사 방법이 사실상 결론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나오면 아무리 열심히 수사를 했더라도 수사 결과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건희를 검찰청사가 아니라 피의자가 원하는 장소로 찾아가서, 그것도 국민은 커녕 검찰총장까지 모르게 비공개로 조사한 것이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했다는 것은 이 총장 뿐 아니라 검찰의 일반적인 판단으로 보입니다. 이래서는 검찰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고 해도 할 말이 없어지고, 야당 수사도 제대로 할 수 없어집니다.
집단 항명을 주도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자신도 지난 5월 첫 출근길에 김건희 사건 수사와 관련해 "수사에 지장이 없도록 모든 조치를 취할 생각"이라며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법과 원칙에 따라서 제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중요 피의자에 대한 수사를 검찰총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조사한 뒤 일방 통보하고, 그 조사를 피의자가 원하는 곳으로 가서 찾아가서 하는 것이 법과 원칙에 따른 것인가요. 혹시라도 이럴까봐 검찰총장이 진즉에 검찰청으로 불러서 조사하라고 거듭 이야기를 했다는데도 이를 무시한 것을 항명 이외에 설명할 말이 있을까요. 김건희 수사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