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로이 르위키 명예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모두 755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 실험을 진행해 2016년 발표한 ‘효과적인 사과 구조에 대한 연구(An Exploration of the Structure of Effective Apologies)’ 논문이 있습니다. 연구팀은 이 연구 논문에서 사과문에 흔히 포함되는 6가지 구성 요소를 제시하고 그 중 어느 것이 사과의 진정성을 전달하고 악화된 상황을 회복하는데 가장 도움되는지 평가했습니다.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어떤 기업 회계부서의 부장으로서 신입부원을 선발하는 상황극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지원자 중 한 사람이 이전 기업에서 고객의 소득신고를 올바로 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건을 추궁하자 문제의 지원자가 사과를 합니다. 이때 참가자들은 해당 지원자가 말하는 사과가 얼마나 적절하고 효과가 있는지 점수를 매겼습니다.
연구팀은 지원자의 사과 내용에 ①후회한다는 표현 ②일의 경위 설명 ③책임 인정 ④뉘우침 선언 ⑤피해 복구 약속 ⑥용서 호소라는 6가지 요소를 다양하게 섞었습니다. 연구 결과 가장 효과 있는 사과는 이 6가지 요소가 전부 포함됐을 경우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6가지의 효과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과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책임 인정’이었습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이유나 변명을 붙이지 않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피해 복구 약속’입니다. ‘책임 인정’이 사과하는 마음의 진정성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복구 약속’은 그 피해를 되돌려 놓겠다는 실천적인 다짐입니다.
‘후회한다는 표현’ ‘일의 경위 설명’ ‘뉘우침 선언’은 필요할 수 있지만 앞선 두 요소보다는 효과가 떨어졌습니다. 가장 효과가 낮은 요소는 ‘용서 호소’였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는 말은 사과문에서 생략해도 무방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 16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으로 여당 총선 패배에 대한 입장문을 정리해 읽었습니다. 총선 패배를 그간의 국정의 결과로 받아들이고 사과의 뜻을 밝힌다는 취지였습니다.
12분짜리 이 입장문 앞 절반 정도에 “살피지 못했습니다” “미흡했습니다” “부족했습니다” 등 르위키 연구팀이 밝힌 사과의 제1요소 ‘책임 인정’이 줄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책임 인정’은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책임을 인정하는 말 앞에 ‘열심히 잘 했다’는 내용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14번이나 말입니다. 누군가가 “최선을 다 했는데도 모자란 부분이 있었다”고 말하면 그것을 진정한 사과로 들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사과에서 두 번째 중요한 요소인 ‘피해 복구 약속’은 제대로 되었을까요. “국민의 삶을 더 적극적으로 챙기겠다” “맞춤형 정책 추진에 힘을 쏟겠다” “합리적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가 전부입니다. 이런 추상적인 약속을 듣고 피해 복구가 가능할 거라고 느낄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