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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식 캐치프레이즈가 된 노무현 대통령 소르본대학 연설 전문

by gambaru 2024.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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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대통령 서거 15주기 추도식이 있었습니다. 올해 추도식의 주제는 '오늘의 실천이 내일의 역사입니다'였습니다. 노 대통령이 2004년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 초청 받아 하신 연설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 날 노 대통령은 어떤 연설을 했는지 노무현 사료관에 남아 있는 연설문을 꺼내 읽어봅니다. 길지 않네요.

"평화를 통한 공존, 화해∙협력을 통한 번영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증명해야 한다" "한반도가 평화의 진원지가 될 때 동북아에 새로운 역사가 펼쳐질 것이다" "인류를 이끌어가는 것은 선진국의 책무다" "여러분의 생각과 실천이 바로 내일의 역사다"는 말씀 하나하나 가슴에 와 닫습니다. 그립습니다.

'EU 통합과 동북아 시대'

존경하는 케네 교육총감, 장 로베르 피트 총장, 그리고 교수와 학생 여러분, 따뜻한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소르본느 대학은 세계 지성의 상징입니다. 누구나 한번 와보고 싶어하는 이곳에서 여러분과 대화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방금 총장님께서 해 주신 연구소 설립 제안에 대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제안에 대해서는 좀더 깊이 상의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 여러분, 희망이 없는 미래는 미래가 아닙니다. 그리고 가능성이 없는 희망 또한 희망이라 할 수 없습니다.

나는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를 존경합니다. 프랑스는 역사의 고비마다 인류에게 창조적 미래를 제시하고, 그 미래가 실현가능한 것임을 역사로써 증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가 추구하는 이상의 실현은 많은 희생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는 역사의 법칙까지 일깨워 주었습니다. 자유와 평등의 횃불을 밝힌 프랑스대혁명이, 그리고 그 이후 민주주의를 제도화해 온 것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19세기 역사는 민주주의라는 숭고한 이상만으로 인간의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민주주의 대의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은 20세기 들어서도 전쟁과 혁명, 이념 갈등 등 극단적 대결의 과정을 겪어 왔습니다. 오늘날도 냉전 체제는 종식되었지만, 세계 도처에는 여전히 분쟁이 있고, 대화와 타협보다는 힘의 질서가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불안이있습니다. 세계 질서가 어디로 가게 될지,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인류에게 희망을 주었듯이 지금 우리에게도 새로운 희망과그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정치력으로 갈등을 종식하고, 과학기술문명이 악용되는 것을 통제할 수 있고, 기아와 질병, 생태계 파괴, 무엇보다 도덕적 위기가 극복될 수 있는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평화를 통한 공존, 화해∙협력을 통한 번영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증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수 여러분, 그리고 학생 여러분, 나는 그 가능성을 EU에서 찾고자 합니다. EU는 평화와 공존, 화해와 협력의 상징입니다. 이제 유럽은 제국주의의 약육강식과 극단 대립의 질서를 극복하고, 전 세계 교역량의 40%를 차지하는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나는 EU의 발전 과정을 보면서 프랑스에 대한 존경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프랑스는 전쟁의 고통을 받은 국가이면서도 독일을 포용하는 도덕적 결단으로서 과거를 청산했습니다. 이를 통해 국민의 도덕적 수준을 높이고, EU를 주도할 수 있는 명분과 자부심을 확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스스로 강대국임에도 불구하고 패권적 질서를 거부하고, 이웃나라들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으면서 통합의 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랑스의 화해와 관용을 높이 평가하며 찬사를 보냅니다.

학생 여러분, 나는 오래 전부터 EU의 출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유럽통합의 아버지 장 모네, 유럽석탄철강공동체 창설을 제의한 슈망 외교장관 등 프랑스 지도자들의 선구적인 노력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국정의 목표로 삼아 왔습니다. 내가 동북아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힘센 나라나, 지배하는 나라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북아에 EU와 같은 개방적 지역통합체를 만들고, 이러한 질서가 세계 질서로 확대되어 나가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강대국이 아닙니다. 한때 식민 지배를 당했고, 아직도 남북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에서 프랑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자 하는 근거가 있습니다. 동북아에는 해소되지 않은 과거사의 앙금이 남아있고, 언제 다시 배타적 국수주의가 등장하고 적대 감정이 되살아날지 모른다는 불신이 잠재해 있습니다. 한국은 이러한 갈등과 불신을 풀 수 있는 도덕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았고, 해를 끼친 일도 없습니다. 주변국 모두로부터 어떤 경계의 대상도 아닙니다. 한민족은 역사상 900여 차례나 외침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주변국을 침략한 적이 없습니다. 한글이라는 고유한 문자를 발명했고, 다양한 문화를 독창적으로 발전시켜서 이웃나라에 전파했습니다.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침략 전쟁을 일으킨 적이 있고, 그 이후 지금까지도 주변국가의 깊은 불신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동북아의 질서를 주도하려 한다면 주변국들이 불안해 할 우려가 있습니다. 중화주의가 패권주의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주변의 불안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바로 우리 한국의 주도적 역할과 선택이 가능하고 또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이러한 역할을 감당할 만한 충분한 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의 경제와 민주주의 나라를 이룩했습니다. 2차대전 이후 수많은 나라가 독립했지만 우리만큼 성공한 나라가 많지는 않습니다. 분단의 멍에를 지고 있지만 그 극복 과정조차도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진보의 계기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교수 여러분, 그리고 학생 여러분, 한반도 평화는 동북아 시대에 있어서 또 하나의 핵심적 요소입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당사자이고 또한 실제로 많은 노력을기울이고 있습니다. 일례로 지난 50여 년 동안 휴전선으로 가로막혀 있던 남북간 철도와 도로가 올해 안에 개통됩니다. 지금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 화해∙협력 정책은 위험을 회피하려는 소극적인 차원의 정책이 아니라 동북아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려는 적극적인 노력입니다. 북핵 문제를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것도 이와 관계가 있습니다.

EU의 기초가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에 있었듯이 한국이 화해의 전령사가 되고, 한반도가 평화의 진원지가 될 때 동북아에는 새로운 역사가 펼쳐질 것입니다. 나아가 세계 질서는 보다 안정되고 유럽을 비롯한 각 지역도 더 많은 협력과 공존의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학생 여러분, 인류 역사는 그 전환의 시기마다 누구에겐가 소명을 맡겼습니다. 선각자들의 피와 땀으로 역사의 요구에 충실했을 때 인류 사회는 진보를 이루어 냈고, 그렇지 못한 때에는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오늘의 세계도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누가 이 역사의 소명을 받들 것인가? 이것은 세계 인류를 이끌어 가는 선진국들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나는 프랑스를 주목합니다. 소르본느 지성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합니다.

역사는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웠으며,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가? 지금 여러분의 생각과 실천이 바로 내일의 역사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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