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사위의 7월 19일 윤석열 탄핵소추청원 청문회에서는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관련 질의가 하루종일 이어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7월 31일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기록 경찰 이첩 보류와 이와 관련한 당일 언론 브리핑 취소를 지시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이 지시를 해병대 사령관에게 하기 직전에 받았던 대통령실 전화, 바로 '02-800-7070'을 누가 걸었느냐에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박지원 의원은 이 전화를 건 사람이 수사 외압 사건의 "범인"이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실은 한사코 이 전화가 어느 사무실 전화인지 밝히기 거부했지만 며칠 전 국회 질의를 통해 '대통령 경호처' 명의의 전화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다만, 명의가 경호처라고 해서 경호처에서만 쓰는 전화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은 이날 청문회에서 대통령실 전화는 모두 경호처에서 기본적으로 통제하기 때문에 경호처 명의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호처 아닌 다른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전화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최근 국회 운영위에서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비서실, 안보실 전화는 아니다"라고도 말했습니다.
이종섭 "답변 할 수 없다"며 증언 거부
청문회에서는 이 전화를 자신의 휴대폰으로 받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질의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이 장관은 대통령 또는 대통령 참모와 국방부 장관의 통화를 공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끝까지 누가 건 전화인지 답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대통령과 개인 휴대폰으로 통화한 것이 확인된 8월 2일 3건의 통화에 대해 뒤늦게이지만 "대통령과 통화"라고 인정한 것과 태도가 다르지 않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통화기록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인정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장관은 2018년 합참차장(중장)을 끝으로 군대를 떠났다가 2022년 윤석열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에 발탁된 인물입니다. 대구 출신으로 대선 때 윤석열 캠프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군내에서는 합리적이고 명석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군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채 상병 사건에서는 대통령실과 국방부, 해병대, 경찰 등의 수많은 통화가 외압의 가능성을 암시하는데도 불구하고 수사 기록 이첩 보류 등 중요한 판단을 자신이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순직 해병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온국민의 바람에는 눈감은 채 정권을 위한 '꼬리 자르기'의 선봉에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가 진실을 말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더 이상 무리인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관련 청문회가 열리더라도 다시 부를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7건 통화 모두 수석회의 중 걸려와
하지만, 그가 입을 닫는다고 이 전화를 누가 걸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통화기록만 봐도 과연 누가 이 전화를, 이만한 상대에게 걸 수 있을지 짐작 못할 건 아닙니다. 군사법원을 통해 공개된 7월 31일 '02-800-7070' 발신 7건의 전화 시간과 이 전화를 받은 사람은 아래와 같습니다.
· 10시 21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보좌관
· 10시 30분 원희룡 장관 보좌관
· 10시 49분 원희룡 장관 보좌관
· 11시 9분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 11시 43분 주진우 법률비서관
· 11시 53분 김모 씨(군 관계자 추정)
· 11시 54분 이종섭
오전 10시에는 원희룡 장관과 3차례 통화하고, 11시에는 주로 군 관계자와 통화합니다. 그런데 이날 오전 이 시간대는 대통령실에서 수석비서관 회의가 열리고 있을 때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박홍근 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누가 이 전화를 걸었을지 추론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박 의원은 '02-800-7070 주인? 원희룡 전 장관은 알고 있다!'는 글에서 지난해 8월 1일 조선일보에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7월 31일) 대통령실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최상목 경제수석에게 관련 보고를 받은 뒤, 곧바로 원 장관에게 전화 통화로 (철근 누락 아파트 300곳) 전수조사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는 기사를 소개하면서 "윤 대통령이 경제수석 보고를 받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서 02-800-7070 전화로 원희룡 장관의 비서관 번호를 통해 원 장관에게 직접 지시했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습니다. "기사가 맞는다면 윤 대통령이 이날 오전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02-800-7070 전화로 원 장관에게 지시를 한 것"이고 "곧이어 해병대원 순직 사건 보고 후 격노해 같은 전화로 이종섭 장관과 직접 통화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조선일보 기사 제목은 '尹, 원희룡에 직접 전화해 전수조사 지시'였습니다.
이날 안보실 회의는 오전 11시께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제 관련 수석 회의가 먼저 있고, 이어 안보실 회의가 이어졌던 것으로 추론한다면 경제 수석 회의 때 바로 원 장관과 통화했고, 안보실 회의 때도 그런 행태가 이어졌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수석비서관 회의가 있는 날 유선전화 하나로 국토교통부 장관, 안보실장, 국방부 장관, 법률비서관에게 계속 전화를 할만한 사람이 누구일까요.